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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여행기

1975-7-14 (8)

by 늘 편한 자리 2015. 3. 1.

둘이서 배를 타고 5시쯤 부산에 도착했다.


영도다리를 지나서 4부두에 있는 하선장까지 가면서 부산 구경을 했다.


둘이서 용두산 공원에도 올라가 봤다.


그리고 한시간쯤 후에 진은 다시 남해를 가겠다고 배를 타고 떠났다.


정확한 이름도 주소도 모르고   전화번호도 안 주고 갔다


사진을 찍어 준다고 해도 싫다고 한게 연락처를 주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40년이 지나도록 가끔 생각이 나는데 물어라도 봤을걸하는 후회가 많다.


그 친구도 어디선가 살고 있으면서 나를 가끔은 생각할지....


금년에 한국을 다녀왔다. 5년만에 서울 대구,부산,광주,목포를 다녀 왔는데


지금 내가 쓰는 글이 세상은 다 변했는데 40년전 이야기를 엮어 본다는게


더우기 주인공도 엑스트라도 없는데 너무 재미가 없는것 같아 이 글을 종 할려고 한다.


시작이 있으니 끝을 내야 하지 않을까 해서 꼭 쓰고 싶은걸 쓰고 접을까 한다.


 


그 날밤은 부산에서 자지 않고 포항으로 올라갔다.


포항에 도착해보니 거기도 장승포하고 비슷했던것 같다. 허름한 여관같은곳에서 잠을 잤는데


밤새 시끄럽고 여자들이 들락거리는게 좋은곳은 아니었다.


저녁에 도착해 바로 잠자리부터 찾았더니 포항 구경은 전혀 하지 못했다.


아침에 보경사를 갔다. 여행안내서에 나온데로 갔더니 많은 사람들이 절을 지나 있는


괴상하게 생긴 바위들을 구경하러 왔다. 그리곤 경주로 갔다.


7월 20일 오후에 어스름할때 도착을 해서 여기저기 다녀봤는데 가다보니까 


재래시장같은데도 들러보고 해가 떨어지자  여인숙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지나가는 나에게 말을 거는 아저씨가 맘에들어 그곳으로 숙소를 정하고 들어갔다.


아저씨가 이것 저것 묻더니 혼자냐고 하면서 심심해서 혼자 어떻게 다니냐며 아가씨를 소개해준다고 하는데


농담인지 진담인지 아니면 이상한 여자를 하룻밤 소개를 해준다는건지 알수가 없었는데


너무 피곤해 이야기 하는동안에도 꾸벅꾸벅 조니까 들어가 자라고하곤 자리를 떴다.


아침에 일어나니까 간밤에 잠을 많이 자서 그런지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이곳저곳을 물어서 기웃거리다 경주 박물관에도 가보고 했는데 날이 너무 더웠다.


하늘에 구름한점 없는데다 너무 더워 도저히 걷기가 힘들것 같아 버스를 타고 불국사로 갔다.


거기서 석굴암까지 가는 작은 버스를 탔다.


석굴암이 마침 개방을 해서 안에까지 들어 갈수가 있었다.'


얼마전까지 수리한다고 사람 출입이 금해졌다는데 그날은 다행히 볼수가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스님이 한분계셨고 교복입은 여학생이 둘이 있었다.


그중 한 여학생이 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업드려 절하면서 두손을 앞으로 내밀며 펴고 하는데 참 신기했다.


그렇게 절하는건 그때 처음봤다.


또 한 여학생은 옆에서 절 하는걸 보고 서있었다.


한 두번 절하는걸 보고 밖으로 나와 어릴때 책에서 보고 배웠던 석굴암 주위 경치가 정말 있는가하고 확인을 해봤다.


조금있으니까 두 여학생이 밖으로 나왔다.


절을 했던 학생이 키가 작은 편이었다.


마침 내가 사진을 찍을려는데 주위에 사람이 없어 여학생들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그러면서 나를 찍어주면 두사람 사진도 찍어 나중에 부쳐주마 했더니 절을하던 여학생이


그러자고 선뜻 카메라를 받아들고 나를 찍어줬다.


나도 찍어주고 주소를 물어보니 서울 주소를 줬다.


같이 있던 여학생이 서을 간다고 그곳에서 전해주라고 했다.


서울종로로  간다고 해서 잘됐다고 연락처를 받고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으로 나왔다.


아직도 하늘은 맑고 해는 너무 뜨거웠다.


정류장은 콘크리트로 포장이 돼어있고 나무 한그루 없어 너무 더웠다.


수도가가 있어 꼭지에 입을 데고 물을 마시고 있으니 조금 전에 서울간다는 여학생이


환타를 한병 사가지고 와서 줬다. 너무 고마웠다.


버스를 타고 내려와 불국사에 들어갔더니 샘이 있고 동아리 밖으로 물이 흘러넘치는데 거기서 세수를 했다.


같이 내려왔던 아까 환타를 준 그 여학생이 가지고 온 수건을 물에 적셔 빨더니 꼭 짜서 나를 줬다.


딱으라고.


사실 나는 수건도 없어 옷으로 딱고 말려고 했는데 얼른 받아들고 보니 고맙기도 하고


여학생이 물에 적셔주는 수건이니 고맙기도 하고 딱고나서 내가 한번 물에 적셔 짜준것 같다.


자연스레 이야기가 시작되고 같이 동행이 됐다.


다보탑하고 석가탑에서 사진을 찍고 서울에서 꼭 만나자고 헤어졌는데


이 여학생들은 대구에서 이별여행을 왔다고 했다.


친구가 서울로 간다고 섭섭해 경주 구경을 왔다는거다.


여학생들하고 헤어졌던 곳이 불국사에서 나와 경주역까지 가서 헤어졌는데 기억이 없다.


이렇게 먼곳 까지 교복을 입고 온게 좋게 보였다.


그리고 혼자서 더 가볼데를 생각해보니까 이제 대구밖엔 갈데가 없었다.


경주역까지 가니까 갑자기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났다.


이제 돌아가자.갔다가 다시 떠나더라도 일단 집에 가자하고 생각을 하니까 다른생각이 나질 않았다.


서울까지 표를 사려고 앉어서 남은 돈을 세어보니까 6000원이 남았다.


여기까지 오는데 8일 동안 14000원을 썼으니 무지 아껴쎴다.


야간열차를 타고 돌아오는데 낮에 만났던 여학생들은 여행하면서 스치던 사람들 정도로 기차를 타면서 잊어먹었다.


나중에 현상을 하고 사진을 찾으니까 새삼 전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환타하고 물수건생각이 났다.


어쩌면 환타하고 물수건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보름쯤 후에 연락을 했더니 종로2가에 있다고 해서 YWCA지하 다방에서 만나자고 했다.


사진을 가지고 갔더니 같이 있는 언니라고 같이 나왔는데 사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교복을 입고 있을때하고는 달랐다.


당돌하게 보이기도 하고 껌을 씹고 있는데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전에 만났던 친구는 잘있냐고 묻고 별 이야기 없이 헤어 졌는데


인연이라는게 있는지 서너달 후에 전화가 와서 대구 친구가 안부를 전해달라고 했다고해서 다시 연결이 되고


또 서너달후에는 대구에서 친구가 올라왔는데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고해서


다시 만났는데 그 인연이 여지껏 이어져 마누라 남편이 됐다.


1975년 7월 21일 경주 석굴암에서 만나 1981년 4월 10일에 결혼하고 여지껏 잘 살고있다.


그때 이야기가 나오면 지금도 서로가 웃는다.


만약 환타를 안 사줬다면 어땠을까? 물수건을 주지 안았다면 어땠을까?


나중에 들으니까 절을 하던 여학생이 나를 더 좋아했다고 하는데 그때 나는 전혀 몰랐었다.


그 여학생은 일본으로 일본사람에게 시집가서 잘 살고 있다.


호텔 경영학을 전공하고 일본호텔에 취직해 아예 시집도 그리 갔다.


참 긴 세월을 대구 부산을 다니면서 만났다.


그때는 지금처럼 밤에 돌아다닐수가 없을때라 늦으면 혼자서 여관방 신세도 많이 졌다.


밤에 야간열차를 타기도 했지만 그나마도 시간이 너무 짦았다.밤 12시 통행금지 시간까지는.


보고싶어 대구를 갈려면 하던일을 어느정도 해놓고 거래처 가는것 처럼 오후에 기차타고 내려가


직장 퇴근하고 오는 사람 만나면 서너시간만 지나면 통금이었다.


결혼전까지 경부선에 뿌린 시간만해도 엄청 났다.


4년정도를 일주일에 한 두번은 다녀왔으니 어떻게 다녔는지 모르겠다.


연애를 길게 하다 보니 위험한 순간도 더러 있었다.


더우기 젊고 건강한 남녀가 떨어져 있으니 조그만 부분에도 화가 나고 토라져 한참 동안 말도 안하고 지냈는데


인연이란건 그냥 엮이는게 절대 아닌것 같다. 

 

한번은 나도 전혀 모르는 이유로 화를 내고 물어도 대답도 안해서 답답했는데

 

대구에서 올라와 집 근처 여관에 방을 잡아주고 아침에 온다고 했는데 아침에 와보니

 

사람이 없었다. 말도 없이 가버린거다.

 

화가 많이났나 본데 알수가 없었다. 그 때는 무엇을 물어봐도 대답도 잘 안하고 말수가 적고

 

배 고프냐고 물어보면 항상 괜찮다고해서 내가 배가 고플때도 많았다.

 

나도 연락을 안하고 한달쯤 지났는데 매일 생각에 이제 끝난건가 했지만 끈을 놓을수는 없었다

 

그런데 10월 26일에 박대통령이 죽었다 .

 

온 나라가 술렁이고 모두들 좋은건지 나쁜건지 판단을 뭇하고 두사람만 모여도 쉬쉬하고

 

말들을 하는데 나도 그 핑계로 대구에 전화를 했다.

 

여기는 술렁이는데 거기는 괜찮냐고 했더니 아주 반가워했다.

 

가끔은 쎄게 나가도 되는데 너무 살살했나.

 

아마 그날이 없었으면 연락을 안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매년 그 날이 되면 생각해봤다.

 

이 오래된 이야기를 시작 한건 인연이란 이 부분이 쓰고 싶어 시작했다.


그런데 쓰다보니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수가 없었다.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쓸수는 없고 살을 부치려고 해도 식상해서 이제 종을 하는게 나을것 같다.


혹시라도 읽어주시는 분이 있다면 인연이라는걸 쓰고 싶었다는걸 이해 해 주셨으면 한다.  


몇달전에 손녀가 태어났다.


그 아이가 나를 닮았다고 사람들이 그럴때마다 너무 기분이 좋다.


나보다는 예쁜 지 엄마를 닯고 잘생긴 지 아빠를 닮아야겠지만 나중엔 그렇게 변하겠지만


그 말을 들을때마다 내가 살아온 긴 세월을 보상받는 기분이다.


결혼을 하고 그해 말 1981년에 미국으로 와서 한달만에 와이프도 큰애를 업고 이민가방을 두개를 밀고


손에 보따리까지 들고 시카고공항으로 왔다.


엊그제 같은데 지금 내가 환갑을 넘겼으니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겠다.


살면서 힘든일이 우리에게만 있었겠냐마는 잘 해치고 나와 사는것 보면


옛분들이 하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다 맞는것 같다.


가진게 많은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차이가 뭐가 있으며 행복한 사람이나 불행한 사람이나


숨쉬고 세월보내고 떠나가는건 다 마찬가지다. 


40년전 이야기라도 지금 생각하면 엊그제같은데 앞으로 40년을 살지는 모르지만 그것도 내일처럼 왔으면 한다,

,

 

 

포항 보경사에서.

 

앞에 있는 여학생이 환타를 준 학생이다.

 

2014년 추수감사절 보스톤에서 손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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