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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글...

꼬마.

by 늘 편한 자리 2020. 12. 21.

 

일요일 아침이다.

8살 꼬마는 아침을 먹은 둥 마는 둥 항상 하는 데로 아침나절 집을 나섰다.

특별하게 정해놓고 나가는 건 아니고 항상 나가 보는 거다.

집에 여동생이 있지만 같이 놀기엔 두 살 아래라 마땅하게 같이 놀게 없다.

아버지는 가게를 한다고 광주로 가서 있으니까 어쩌다 볼 수밖에 없고 엄마는 

아침나절이면 화장을 하고 한복을 입거나 양장을 하고 나간다.

아마 목포에서 하는 또 다른 가게에 나가는 것 같다.

그리고 외할아버지 하고 같이 사는데 8살 꼬마가 할아버지하고 놀기는 지금 세상 하고는 달랐다.

요즘 할아버지는 손주하고 놀고 싶어 안달이지만 그때는 같이 노는 건 체면에 힘들었을 거다.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시는데 선생님이 체통 없이 손주하고 어디에서 놀겠나.

요즘같이 놀이터도 공원도 없던 시절인데.

그리고 이모, 고등학교 졸업하고 같이 사는데 엄마 같았다.

엄마가 집에 없으니 챙겨주는 건 항상 이모가 해줬다.

잠잘 때는 문간엔 이모 그 옆에 여동생 그리고 꼬마 제일 안 쪽엔 할아버지가 주무셨다.

꼬마는 오줌을 잘 쌌다.

낮에 정신없이 놀다가 저녁이면 쓰러져 잤는데 엄마나 아버지가 자기 전에 오줌을 뉘면

되는데 항상 12시가 다 돼서 들어오니까 자기 전에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할아버지 옆에서 자는데 실수 안 하려고 조심했다.

할아버진 꼭 새벽에 깨셔서 담배를 한대 피우셨다.

당연한 걸로 알았지만 지금 같으면 좁은 방에서 피우는 건 상상도 못 할 건데 

새벽 두시쯤 일어나셔서 꼭 피우셨다.

자다가 깨었던 건 숨 쉬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꼬마 집은 하숙을 쳤다. 방이 아주 많았다. 열개 정도 되니까 하숙집 하기엔 충분했다.

경찰 아저씨도 있었고 학교 선생님도 있었다. 저녁을 먹을 땐 다 같이 마루에 앉아서 먹었다.

어느 날 아침에 하숙하던 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아주 급하게 불렀다.

장 선생님, 장 선생님...

케네디가 죽었답니다. 케네디가.

그 사람이 신문을 들고 뛰어오던 모습이 무슨 일인가 하고 신기했다.

집을 나온 꼬마는 특별하게 정해진 곳을 가는 게 아니고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죽동에 있던 집은 길이 내리막이었다.

집 대문도 나오면 꼬마 걸음으로 열댓 걸음을 걸어야 길로 나왔다.

바로 아래에 있던 집은 초가집이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거지들이 모여 살았다.

여러 명이 모여 살았는데 동냥해온 밥을 나눠 먹는 것도 보고 아직 어린데 담배 피우는 것도 봤다.

말을 걸어오면 같이 이야기도 했지만 이상하고 아주 끈끈한 냄새들이 났다.

한동안 살았는데 어느 날 다 사라져 버렸다.

목포역에 가까운 곳으로 오니까 또래 애가 사는 집이 보여 이름을 불러봤다.

그리곤 들어가 같이 잠깐 노는데 쫓겨 나왔다.

형인지 삼촌인지 노는 게 보기 싫은지 공부하라고 하니까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와보니 특별히 갈 데도 없었는데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났다.

그래서 목포역 쪽으로 걸어갔다.

오늘이 오시는 날이 아닌 걸 알았지만 괜스레 가 봤다. 

오시는 날은 역으로 가서 한참씩 기다렸다.

지금처럼 정확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때라 오후에 오신다면 대충 가서 마냥 기다렸다.

기차가 도착하면 아버지가 다 멈추지도 않은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이 멋있었다.

몇 년 후 광주에 사시는 친할머니에게 갔을 때 그 모습을 흉내 내려고 기차가 멈추기도 전에

뛰어내리다 넘어졌다. 할머니가 보시더니 그러려면 다시는 기차 타고 오지 말라고 하셨다.

역에서 사람들이 웅성 거리는 게 기차가 도착했는지 떠나는지 하는 것 같았다.

키가 작은 꼬마는 개찰할 때 기차표를 묻지 않아 개찰구를 쉽게 통과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오실 때 마중을 나가면 어른은 역 안으로 들어가는 입장표를 사서 들어갔는데

꼬만 그냥 묻어 들어갔다.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 거리는 걸 보다가 같이 밀려 들어가듯이 개찰구를 지났다.

그리고 기차를 보니 광주라고 쓰여 있었다.

순간 아버지가 계시는 곳이 광주라는 생각이 나 가보자는 생각에 기차를 탔다.  

광주라는 데가 어딘 줄도 모르고 가본 적도 없는데 무작정 탔다.

목포역은 종착역이라서 그런지 항상 기차들이 많이 서 있었다.

애들하고 가끔 그 기차들 사이에서 놀았다.

차 뒤 하고 앞으로 나온 꼬리처럼 생긴 걸 붙잡고 이쪽저쪽에 서서 여보세요 통화도 해보고 

문이 열렸으면 들어가 앉아 보기도 했는데 의자엔 시금 털털한 냄새가 고약했다.

역 한쪽에는 땅을 깊게 파서 콘크리트를 하고 그 위에 기차를 세워 

아래를 올려보고 고치는 곳이 있었는데

기차 속이 궁금해 계단으로 내가 보면 그곳엔 항상 사람들이 똥을 싸놨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이곳저곳에 싸놔서 땅 아래로 냄새가 고여 아주 심했다.

다 커서도 목포를 떠 오르면 그 냄새, 그 똥들을 못 잊고 가끔 꿈도 꿨다. 

기차를 타고 안에서 기웃기웃거리는데 기차가 출발했다.

꼬마는 달리기 시작한 기차에서 내릴 수는 없고 

아직도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기차 밖으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가 들렸다.

목포역에서는 기차가 도착하거나 떠날 때는 그 노래를 꼭 틀었다.

기차가 출발하고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조용해지니 그때서야 기차를 탔다는 생각에 걱정이 시작됐다.

시간이 얼마 지나  첫 번째 역에 섰다.

그 역에 섰는데 망설이다가 내리지를 않았다.

아직 어디를 간다는 것보다 그때까지도 아버지가 있는 광주만 생각했다.

기차가 다시 출발하고 조금 지나니까 차표 검사를 시작했다.

꼬마는 그때서야 겁이 나기 시작했다.

표도 없고 가는 데가 어딘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은 거다.

표 검사하는 사람이 오니까 꼬마는 다음칸으로 또 다음칸으로 갔다.

그러는 사이에 또 역에 도착했다.

몽탄이라는 곳인데 사람들이 이고 지고 내리기에 더 이상 가는 건 안된다는 생각에 따라 내렸다.

내리고 기차는 떠났는데 역이라는 데가 특별히 막힌 데가 없으니까 내린 곳에 막연히 서 있다가

사람들이 다 떠나고 나서 꼬마도 역사 옆으로 난 길 아닌 길로 나왔다.

걱정이다. 

이제야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되고 밖으로 나오니 보이는 것 논 밭뿐이고 건물도 없다.

목포역은 나오면 가게도 있고 놀던 길이라 어디로 향하던 집을 찾아 가지만 

여긴 딱히 보이는 집도 없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도 이리저리 사라지니 꼬마는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였다.

역에서 나와서 왼쪽으로 갈지 오른쪽으로 갈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그래도 운이 좋았는지 그냥 느낌으로 했는지 기차가 왔던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포장도 안된 길은 차라도 한대 지나가면 뿌연 먼지에 길이 좁아 논두렁으로 피해야 했다.

낮의 시골길은 한가했다. 사람도 안 보이고 가끔 아주 가끔 차가 한 대씩 지나갈 뿐이다.

한참을 걸어가니 소 달구지를 끌고 가는 아저씨가 보였다.

달구지에 뒤에 앉아 같이 가는 또래 꼬마도 있었다.

아저씨가 꼬마를 보더니 동네 애 같지 않으니까 묻는다. 어디 가냐고.

쪼그만 놈이 걸어가는데 목포를 간단다. 아저씨가 기가 막힌다듯이 쳐다보면서

여기서 목포까지 몇 십리인데 걸어 나고 묻는데 꼬마는 대답을 못 했다.

한참을 걸어가다 헤어지면서 아저씨가 가는 길을 일러줬다.

이 길로 계속 가면 역이 나오는데 거기서 기차를 타라고.

점심때도 훨씬 지났지만 배 고프다는 생각은 못하고

집으로 가야지 하는 생각에 열심히 걸었다. 

꼬마 걸음으로 한참을 걸으니 역이 나왔다.

역에서 또 살짝 들어가서 타야 하는데 요령을 부려 일부러 멀리 있었다.

한참 후에 목포라고 써진 기차가 왔다.

그런데 타는 사람이 별로 없고 내리는 사람도 없었다.

다행인 건 기차가 바로 출발하지를 않고 한참을 서 있었다. 

다른 기차가 오니까 출발했다. 기차가 서 있으니까 주위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기회를 보다 탔다.

다음 역이 목포역이라 사람들이 일어서서 보따리를 들고 문쪽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 옆으로 비켜섰는데 사람들이 내리는데 신경을 써서 그런지 관심도 없다.

기차가 출발하고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배도 고프고 무슨 짓을 했는가 생각하니 영화에서 길을 잃고 고아가 되는 애들 생각이 났다.

어린 꼬마였지만 영화를 좋아해서 동시 상영하는 극장을 자주 갔다.

기도 아저씨에게 5원만 주면 들여보내줬다.

마지막 영화까지 보면 밤 11시가 넘어 집에 갈 때도 가끔 있었다.

가로등도 없는 길을 밤늦게 다닌 건 위험하지만 

그 시절 목포는 저녁이면 시내에 박쥐가 날아다녔다.

목포역에 도착해서 사람들이 나가는데 이젠 겁도 나고 해서 기차 뒤로 돌아가 놀던 곳으로 나왔다.

역에서 집에까지 걸어가는데 집에 가면 혼 날 걱정에 다리도 후들거리고 

안 들키고 들어갈 궁리를 했다.

그런데 막상 집에 들어가니 아무도 관심이 없다. 

밖에서 놀다 왔겠지 하는지 꼬마가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한건 아무도 모르니 당연히 관심이 없다. 

일부러 무용담으로 말하기엔 아직 어렸다. 

아직 해가 떨어지기 전이라 어디서 놀다 왔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광주까지 가볼걸 너무 빨리 들어왔나!

DiduLa - On The Way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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