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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Symphony No.9 in D minor, Op.125 'Choral'

by 늘 편한 자리 2011. 1. 2.

Symphony No.9 in D minor, Op.125 'Choral'

베토벤 / 교향곡 9번 '합창'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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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베토벤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교향곡을 9곡 작곡했습니다.
이 교향곡들은 두 곡씩 묶어보면, 베토벤의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즉, 1, 2번은 그가 자신의 귀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곡을 씁니다. 1798년 쯤, 자신의 청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남 몰래 치료를 받으러 다녔지만, 별로 좋아지질 않았습니다. 그 나름대로, 불타는 창작력을 교향곡으로 승화시켜 조금은 조급한 느낌으로 곡을 쓰기 시작하여 발표를 하게 됩니다.

1, 2번은 비교적 밝게 자신의 음악을 표현함으로서 생의 의지를 나타냈습니다. 1800년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볼타라는 사람이 쇠막대에 줄을 감아, 전기를 일으켜 배터리의 시초가 되는 짜릿한 발견을 했다면,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코끼리를 앞세워 알프스 산을 넘었고, 나폴레옹은 대포를 앞세워, 오스트리아를 격파하고, 이탈리아를 점령했습니다. 그 때, 베토벤에게는 음악이라는 영원히 변치 않는 무기로 대항했습니다.

3,4번에서 그 시대상황을 잘 나타내 주는데, 3번은 나폴레옹을 묘사하려 했지만, 오스트리아를 침공하는 바람에 이 세상의 모든 영웅들에게 바치는 곡이 됐으며, 4번에서는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것을 진실로 비웃는 듯, 유머러스하게 작곡했습니다.

5번에서는 ‘운명’을 개척하는 듯, 그의 결의를 다지며, 바흐나 헨델의 ‘전원’을 바라며, 6번을 작곡하게 됩니다. 6번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음악의 BRIDGE역할을 하는 표제음악이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베토벤은 한 때, 지도를 받은 바 있는 하이든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사계 등의 작품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질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이든은 밀턴의 실락원, 성서 등을 가사로 작곡하였고, 베토벤도 여러 작품을 가사로 쓰려 노력하였습니다. 괴테의 시를 시도하였으나, 거칠고 심정적인 변화를 그대로 나타내는 베토벤과 섬세하고 조용한 괴테하고는 잘 맞지 않았습니다. 일방적인 구애를 여러 번 했으나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하이든 못지않은 오라토리오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동안 7, 8번을 작곡, 실로 9번이 완성되기 까지는 15년이라는 세월이 더 필요했습니다. 7, 8번은 카니발이었습니다. 7번은 넘쳐흐르는 힘을 8번에서는 주워 담고 있습니다. 6번이 미술로 말하면, 프랑스의 낭만파 화가 프라고나르 같다면, 7,8번은 고흐와 뭉크 같은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보았습니다.
바그너는 7, 8번은 죄 의식에서 해방되는 느낌으로 실낙원의 분위기에서 초현실적인 세계로 들어간다고 평을 했습니다.
6, 8번은 F 장조로 공통적으로 느린 악장이 없습니다. 현실에서 박차고 일어나는 역동적인 기운을 볼 수 있습니다. 꿈틀대고 일렁입니다.

드디어 1824년, 죽음과 슬픔이 닿지 않은 곳에서의 축제, 9번이 완성되었습니다.
베토벤의 속내는 잘 모르겠지만, 하이든이 살아생전에 만들었으면 했으나, 1809년 하이든이 죽은 지 15년 만에 인류가 가장 사랑하고 기악과 성악을 집대성한 유네스코 지정 인류 문화유산이며, 유럽연합의 국가인 ‘합창 교향곡’이 만들어졌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1-8번 까지는 9번을 완성하기 위한 전초 작업이라고 보아도 별로 틀린 말은 아니겠지요. 그가 염원하던 오라토리오, 쉴러의 시와 성서를 바탕으로 전대미문의 불가사의, 장엄미사(클래식에게 길을 묻다 - 201018 참조)와 교향곡 9번은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은 음악사적으로 남녀 혼성4부 합창, 합창단 및 오케스트라가 협연을 한 최초의 것이며, 최고의 칸타타 교향곡이라고 하겠습니다. 또한, 독일 최대의 시인 쉴러(Fredrich Schillers)의 “환희에 부쳐(An Die Freude)”에 곡을 붙인 것입니다.